그는 그냥 멀거니 앉아있을 뿐이다.
4평 남짓한 공간에는 창문과 그가 앉아있는 의자 외엔 아무 것도 없다. 회색의 벽도 그림자에 묻혀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이기만 한다.
그러나 그는 듣고 있다. 모든 것을 듣고 있다. 그는 눈을 감고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듣고 있다.
업무에 지친 샐러리맨이 밤 늦게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왔다. 그 곁을 지나가던 여고생의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맛깔스럽게 들린다. 좀 더 멀리에서는 무엇을 쫓아가는지, 바쁘게 달려가는 경찰차의 사이렌소리와 아스팔트를 긁는 타이어 소리가 날카롭게 들린다. 구석진 골목에서는 불빛이 꺼져가는 네온 사인의 타오르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렸고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와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린다. 어느 방에서 조용히 책장을 넘지는 학생의 소리와 그 옆에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거칠게 두들기는 소리도 들린다. 아름다운 음악이 들리는가 하면 파괴적인 락이 울려 퍼지기도 한다.
도시의 밤은 검은 소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이튿날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날의 기억을 모두 잊을 것이다. 아침마다 - 아니, 정확히는 그가 잠이 깨기 직전마다 오는 여자가 그의 팔에 주사 바늘을 꽂아 넣기 때문이다. 주사를 맞으면 기억이 흐릿해진다. 그러다가 어느 새 사라지고 만다. 그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그는 서서히 내성이 생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에게 놓여지는 주사의 약의 망각 효과가 서서히 약해짐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몇 날만 더 반복되면 그 여자의 얼굴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은, 그는 관리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비참할 정도로 통제되고 있다.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 그런 생각이 지워지지 않기 시작한 기억의 크기와 함께 커져가고 있었다.
“……에스티아.”
어제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어떤 사람의 이름. 그 이름의 누구의 것인지, 본명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어쩌면 기억의 혼란이 빚어낸 가상의 이름일 지도 모른다.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싶지만,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흔적을 들키는 순간엔 최초이자 최후의 기회조차 날아가버릴 수 있다. 그는 신중 해야만 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
내일이 되면 그 이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내일이 아니라도 상관 없다. 언젠가 기억해내면, 그 때는 그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가야 할 목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를 기다린다. 조용히.
불안한 것은, 그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이유 없는 분노감. 어쩌면 그 때문에 더욱 그 이름에 집착이 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최선은 기억을 유지하는 것. 이제는 단순한 시간 문제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대로 창가에 기대어 눈을 감은 그는 수백 km에 달하는 반경의 도시 내의 모든 소리를 들으며 혹시나 들릴 지 모를 그 이름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감은 눈 아래로는 여전히 타오르는 빛을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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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참 아끼는 아이디어 중의 하나인 할루서네이션 - 이전에도 컨셉 삼아 단편을 쓴 적이 있었죠. 간만에 쏟아내듯이 글을 써봤습니다. 한참 동안 쓰지 않다보니, 역시나 표현력이 떨어진 게 느껴지네요.
중간고사 끝나면 부활의 기지개라도 펴봐야겠군요. 안 필지도 모르지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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