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일을 하거나 장소를 옮기기 전에 여유를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준비기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완벽한 '여유'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개강은 월요일이지만 일요일이라는 일종의 여유를 가지기 위해 토요일 저녁에 자취방에 내려간다는 것과 같은. 뭐, 그런 사소한 기준의 여유인 것이다.

그런 여유 시간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아무런 계획도 없고 단지 몸을 쉬고 생각을 하기 위해 여유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홀로 고립되며 마음을 정리하기엔 더 없이 좋은 기회이지만 그 마저도 어쩔 땐 귀찮기도 하다.

멍 하니 낭비하는 시간. 그런 시간을 나 같은 사람은 여유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들은 낭비라고 부른다. 그런 관점의 차이는 물이 반쯤 차 있는 물컵을 두고서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것과 다름 없지만, 미묘하게도 난 그렇게까지 긍정적이진 않다. 나는 컵에 물이 반이나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여유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여유 중에는 정말 흔들리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이 홀로 좁은 공간에 있다는 건 정신적인 면이 극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관계되어있던 모든 사람에게서 떠나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게다가 더욱 심한 건 내 육체에서도 관심이 떠나 오로지 내 마음과 생각에만 신경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특히나 오늘같이 가을 비가 애처롭게 내리며 달궈졌던 공기를 차갑게 식혀버리는 날이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과도 같은 불안이 올라온다. 여유의 시간은 여유임과 동시에 정신력이 다투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다소 모순적인 이야기가 됐다. 정신력이 극도로 소모되는 시간이라면 여유라고 말할 수 없지 않겠는가?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시간은 정말 어쩌면 낭비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은 유쾌하게 뒤집어서 보자. 때로는 세상 모든 괴로운 일도 뒤집어서 보면 즐거운 면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은 채 홀로 제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판단의 기준은 단지 자기 자신에게서 밖에 나올 수 없는데 그 기준이 일반 사회 보편적인 선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갑자기 문을 열고 뛰쳐 나가 옥상에서 고함을 내지르며 다이빙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 어느 물리적인 현상보다도 빠르게 분열 및 확산되며 그 어느 랩퍼보다도 빠른 비트의 말을 수 없이도 오가게 하는 '생각'이라는 폭풍 안에서 나 자신을 가다듬고 억제하는 것은 나름대로 유용한 수련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성직자가 우러러 받들여지던 시대도 아니고 하니, 그런 정신적인 수양은 지금과 같이 10년지기 친구에게서 걸려오는 전화 한 방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사회라는 시스템을 맛 본 사람은 그 사회의 일부가 계속 되는 것을 하나의 기쁨으로 알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나 홀로 무언가 이루는 것 같다가도 문명의 이기와 사람의 목소리로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이런 현상 또한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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