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회귀현상

Opinions 2008/09/18 23:08
1.
나의 첫 핸드폰은 대학 1학년 때 쓰던 삼성의 플립형 핸드폰이었다. 물론 내 명의는 아니었고 아버지 명의로 나온 걸 내가 빌려 쓰는 형식이었다.
지금 봐도 그다지 두껍지 않은 두께에 심플한 디자인. 색깔과 기구 재질만 세련되었다면 요즘 써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젠 볼 수 없는 플립형 - 그 당시 플립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여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손 끝에 남아있다.

그러다가 군대에 가고 제대하면서 모토롤라 스타택2004를 구매했다. 당시로선 드문 010 으로 번호를 따서 지금까지도 그 번호를 쓰고 있다.
그러나 폴더는 그 자체만으로 두꺼운 구조였다. 웬지모를 부담.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 울트라 에디션 바 타입을 사용하게 된다. 최신예 핸드폰이면서 복고풍이 느껴지는 바 타입. 6.9mm라는 두께는 아직도 잊지 못할 충격과 손맛이다. 
이 폰은 이즘도 아버지께서 사용 중이시다.

입사하면서 강제로 KTF 3G로 바뀌며 주얼리폰을 손에 넣게 되었다. 한 마디로 X같은 물건이다. 슬라이드는 간편했지만 폰 자체 완성도가 아주 낮은 저급품이다. 짜증이 활짝 꽃핀 상태로 용캐 3개월을 버티다가 왕창 쏟아 부어 햅틱으로 옮기고 만다.

이전에 저가형 PDA를 쓰기도 했던 나는 햅틱의 전면 터치패드가 꽤나 친숙했고, 지금까지 써온 핸드폰 중 가장 만족도가 높다.

그 만족도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플립에서 시작한 덕에 핸드폰이란 길죽하고 곧은 형태여야 자연스럽다고 은연중에 느끼고 있던 모양이다.
결국 겉모양과 기능만 최신으로 무장했을 뿐 다시 '막대기'로 돌아온 것이다.


2.
나의 첫 디지털 카메라는 파나소닉의 DMC-F1.
300만 화소로 대표되는 스펙을 가진 시절의 녀석으로, 파나소닉의 디카 초기 모델 중 하나이다. 놀랍게도 아직 이 모델은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던 모델이었다.

그리고나서 좀 큰 카메라들과 고배율 광학줌에 관심이 가 FZ1으로 시작해 본다. 제법 쏠쏠하다. 이후, FZ10도 만져보며 고배율 줌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러나 동시에 의외로 고배율 줌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

이후에 산 카메라가 FX01. 다시 컴팩트 자동 디카이다.
역시나 만족을 준 모델로, 지금봐도 세련된 디자인이 멋지다. 이후의 FX 시리즈는 이 디자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참고로 이 모델도 어머니께서 현역으로 사용 중.

대학생으로서 용돈을 죽어라 모아서 조금 고급기종에 욕심을 부려본 것이 LX2.
LX2를 구매하면서 FX01은 어머니께 드렸고, 나는 풀 수동 기능의 버거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며 사진 촬영을 본격적으로 취미삼아 하기 시작한다.

허나, 카메라에 취미를 둔다는 것 자체가 운명적이다. 결국 나도 DSLR을 눈독들인 것이다.
그래서 LX2를 팔아 치우고 저렴하게 시작한 DSLR이 삼성 GX-1S.
DSLR들은 렌즈만 잘 써주면 아무리 오래된 제품이라도 현역으로 충분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GX-1S를 살 당시에 이미 구형 모델이었지만 나름 잘 쓸 수 있었다.

이후 손떨림보정과 무게로 인해 친구의 펜탁스 K100D와 교환, 몇 개월 간 펜탁스에 푹 빠져든다. 최근 설악산을 갔다올 때까지 재미나게 잘 사용했다.

문제는 무게.
쉽게 들고 나가기가 어렵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단점은, 작정하고 작품사진을 찍는 것이 아닌 내게 큰 단점이었다. 무엇보다도 렌즈들을 들고다니는 게 번거롭고 무거웠다.

결국 설악산 여행을 기점으로 바디와 렌즈 일체를 중고 처분해버렸다.

동시에 구매하게 된 카메라가 최근에 나온 파나소닉 DMC-LX3.
DSLR 사용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카메라 지식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 하이엔드 컴팩트 디카는 LX2를 사용할 때보다 사용조작에 재미가 느껴진다.

파나소닉의 컴팩트로 시작했던 디카 라이프도 지금 시점에서 결과적으로 보면 빙~ 돌아서 다시 파나소닉의 컴팩트로 돌아오게 되었다.



3.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서 계속 신제품으로 바꾸게 되지만, 그 와중에도 처음 접한 모델에 대한 향수는 은연 중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 타입 핸드폰을 좋아하고, 컴팩트 디카를 더 좋아하는 건 제품의 스펙이나 기능성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취향일 것이다. 

크게 보면 나만의 디지털 회귀현상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블라블라 -ㅂ-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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