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으로 하루키를 만나다 - 어둠의 저편

Culture 2005/08/23 16:27
무라카미 하루키를 알게 된 것은 정확히 언제인지 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맨 처음 그 이름을 듣고 여자일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 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어쨌거나 그는 유명한 소설가였고, 그것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현재 진행형으로.

소위 젊은 아마추어 소설가로서 하루키의 소설을 접해보지 않아왔다는 것은 어쩌면 우스운 일일 지도 모른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키의 글을 읽었고, 좋던 싫던 그에 대해 확고한 그들만의 생각도 갖고 있었다. 난 그저 그들의 말만 듣고 있었을 뿐이다.

25주년 기념작. 내 삶과 맞먹는 기간동안 글을 써온 그가 마침내 기념작을 내었다고 한다. 제목은 '어둠의 저편'. 마치 SF 소설이나 영화, 게임을 연상케하는 제목이지만 내용은 오히려 현세가 중심이다.

문제는 그동안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어왔던 거의 모든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스타일이 틀려졌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이 소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 대한 본래의 스타일은 모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글에 대해 말을 해야될 지금, 나는 글 자체로만 판단을 해야하는 어려움에 도착해있다. 게다가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글을 읽고 하루키라는 소설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덩달아 이 소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삼가하기로 했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결론이 나지 않은 결론과 명확한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 뿐이다.

다소 환상소설적인 부분이 중간에 섞여있지만, 내 느낌으론 그다지 글 자체에 녹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완전히 따로 논다고 할까? 그것이 의도였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또 하나 불만인 것은 작품에 대한 해설이 뒤에 실려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설은 단지 다른 사람의 생각일 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사전적 의미인 것 처럼 '그렇구나'하고 넘어간다.
예전에 TV에서 방영되었던 애니메이션, 무책임 함장 타일러를 기억하는가? 주인공 타일러의 기행은 현실이라면 뺨 맞는 것도 모자라 흠씬 두들겨 맞아야 할 행동이다. 그런데 주변의 동료들이 시청자들에게 애써 설명하듯이 그의 행동을 해석하고 멋대로 감동한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 뒤에 실린 해설은 없는 편이 더 좋았을 법한 불필요하고 불편한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요점은, 출판사가 어째서 무슨 권리로 기껏 다 읽고 난 독자들에게 애매한 결론에 대한 상상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냐는 것이다. 그것도 이렇게 이해하지 못했다면 잘못 읽은 것이다라는 것 마냥.

글 자체는 괜찮았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내가 하루키의 글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를 찾는데는 실패했다고 본다. 이 소설은 그저 25년 기념작이며 그의 실험적인 작품이다(독자를 함께 뭉뚱그러서 '우리'라고 표현한 시점 방식은 대단했다).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 생각이 바뀌었는데, 볼 이유가 없어진 건 앞으로의 그의 글이고 과거에 그가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굉장히 궁금해졌다. 좀 더 예전의 책을 볼생각이 생겼다.

단지 낮과는 전혀 다른 도시의 밤을 잘 그려냈으며 인물간 얽힘에 억지가 없다는 점은 본받아야 겠다고 생각됐다.

무라카미 하루키.
어떻게 보면 동양인으로서 정말 대단한 소설가이지만 그 대단함 때문에 그의 글이 과대평가 되고있는 것은 아닐까 -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나의 감상은 마무리 되었다.
어쩌면 내가 못 보고 있는 어떤 면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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