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심취해서 끝까지 한 번에 읽거나, 아예 접근하지 않거나.
그것은 뭔지 모를 거부감과 함께 흡입력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나도 그 흡입력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하루키의 글 중 가장 이질적이라는 최신작인 '어둠의 저편'을 하루키에 대한 첫 접근으로 받아들인 나는 그의 이전 글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하루키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빌려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 생각된다(랑이, 고마워^^).

그렇게 빌려온 것이 이 길고 긴 제목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이다.

다 읽고나서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하루키의 흡입력을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상당한 집중을 했다. 그러나 내가 고민하는 것은 다 읽고난 뒤이다.
나는 과연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싫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냥 그저 그렇다고 말하는 것만으론 부족한 무언가가 느껴졌기에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좋은 느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확고한 결말을 좋아한다. 그것이 속편으로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든 하나의 소설이 되었으면 독자가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결말은 나야만 한다는 것이 내 소견이다. 실제로 글을 쓸 때도 결말을 먼저 생각하고 쓰기 때문에 나로서는 철칙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하루키의 소설은 나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준다. 어둠의 저편에서도 그랬고, 이번 책에서도 그렇듯이 뚜렷한 결말이 없다. 다른 사람들 처럼, 얼토당토않게 무턱대고 시작하는 서두에서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배신감은 더욱 크다.

주인공이 엄청난 고생과 노력을 하고 기나긴 토론과 생각을 한 결과가 고작 운명 받아들이기라니, 전혀 용납할 수가 없다 - 그렇지만, 이것이 하루키가 담고자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조금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이없어지기 시작한 것은 노친네가 갑자기 핀란드로 가버린 시점에서부터였다. 웬만해서는 글 감상에 있어서 글 내용을 언급하지 않지만, 이 책만큼은 내게 실망을 준 포인트가 너무도 확실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왜 이런 결말을 내야하는가? 아직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막연하게 '방법이 없다'라고 일찍이 결론을 내리고 진짜 그대로 결말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태도도 나의 '소설'이라는 관점에서 어이가 없었다. SF와 판타지를 넘나들던 소설이 갑자기 허무주의 염세 소설로 바뀐 것이다.
세계의 끝의 남자가 마지막에 그림자를 배신한 것 처럼(나는 그 장면을 배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루키는 철저하게 나를 배신했다.

나름대로 하루키의 인기작이며 추천작인 이 소설의 결말 스타일은 어둠의 저편이라는 신작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글은 내게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앞서 말한 것 처럼 어떤 이야기든 결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화나 소설, 만화 기타 등등 모든 '이야기'의 형태를 가진 것들에게 있어서 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를 결말에 둔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확실하게 납득 가능한 결말이 지어지면 그 글은 절반 이상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돌아보면, 유수의 이름난 소설들이 전부 그렇게 뚜렷한 결말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애매 모호한 결말일 수록 후세대들의 상상과 추측이 결집되고 해석되어 빛을 발휘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을 그런 면에서 접근하면 무언가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찾게 되는 것이 내가 느낌 배신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읽었고, 그렇기 때문에 어이 없는 결말에 더 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 - 이것이 나의 하루키에 대한 기억이 될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든다.

빌려준 친구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나는 그다지 하루키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