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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어스시 전집 (전6권) - 어슐러 K. 르귄

내 평점 : ★★★★★



고백부터 하자면, 나는 어슐러 K. 르귄의 소설 - 특히 그중에서도 어스시 연대기에 대해서는 냉정한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다. 나는 이 소설의 팬이다. 때문에 평점 만점은 실수가 아니라 사심이 가득한 진심이다.

세계 3대 판타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어스시 연대기는 아쉽게도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얼마 전 어슐러 작가는 세상을 등지고 그의 용들과 함께 서쪽 바다 너머로 날아가 떠나셨다. 그 당시 너무 슬퍼서 작성했던 포스팅에도 언급했지만, 짧게 요약된 줄거리 만으로도 매료되게 했던 이 소설은 내게는 너무나도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판타지 소설, 장르 소설에 대해 가벼운 글이라는 편견만 없다면 이 어스시 연대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체성을 묻는 철학의 줄기가 탄탄하게 이어지는 좋은 소설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작가 본인이 인류학자의 딸이며 동양 사상에 조예가 깊고 시대를 앞질러 간 페미니스트라는 면이 소설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의외로 우리 세대의 젊은 글들보다 편견을 깨기 위해 세련되고 정제된 표현을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있다.

여러모로 추천해 마지않는 소설이다.

마지막으로, 5권 머리말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실질적으로 4권을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어스시 연대기를 접어두었던 작가는, 7~8년이나 지난 뒤에 어스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써 달라는 요청을 듣고서 다시 그 세계를 들여다 봤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가 눈길을 주지 않던 지난 시간 동안 그곳에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자신이 만든 세계가 작가의 의지를 떠나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는 말이다. 종종 소설 속에 잘 만들어진 등장인물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과도 같다고 일컬어진다. 심지어는 그 가상의 인물의 생각과 행동이 작가의 의도를 벗어나기까지도 한다는 말도 있다. 어슐러의 어스시는 등장인물을 넘어 세계 자체가 그렇게 살아 있던 것이다. 새삼 대단한 역량의 작가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머리말이었다.

어슐러 작가의 유명한 말들 중에 '상상력'에 대한 말이 있다. 그는 그 말을 실천한 사람인 것이다.

나의 상상력은 나를 인간으로 만들며, 동시에 어리석은 자로도 만든다. 그것은 내게 온 세상을 가져다 주며, 동시에 그곳으로부터 추방한다.

RIP...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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